안석배 사회정책부 차장대우

지금 '사교육과의 전쟁'에서 전의(戰意)를 불사르는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된 것은 이주호 교육과학부 장관 덕이다. 이 장관은 4년제 대학들 모임이었던 대교협을 대학입시를 관장하는 기관으로 바꾸었다. 그가 2008년 청와대 교육과학수석으로 있으면서 한 일이다.

그래서 수시·정시모집 일정과 세부 내용, 입시 규칙 발표를 교과부 장관이 아닌 대교협 회장이 하게 됐다. 입시에서 대교협이 '심판자' 역활을 맡게 된 것이다.

그 대교협이 올해 더 바빠졌다. 학생들 입시 상담을 전담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수능날인 11월 18일 이후, 대교협의 활약은 정말 대단하다. 수능 등급컷 예측발표, 수험생 상담, 입시 설명회, 입시상담 프로그램 배포…. 사(私)교육 기관은 당황한 표정이다. 지금까지 학원들의 '독무대'에 공공기관이 이렇게 의욕적으로 도전한 적은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사교육과 공교육의 경쟁. 수험생과 학부모로선 이 상황을 즐길 만했다. 학교든 학원이든 대교협이든 다양한 입시 정보가 공급되면 소비자는 좋은 것이다. 게다가 입시 사교육비를 줄여주는 공교육의 선전은 박수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선 것일까. 대교협이 경쟁 상대인 사교육 기관의 발을 묶는 정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우연히도 한 사교육 기관에서 '수능 점수 예측에서 대교협이 다른 학원들에 비해 정확도가 낮았다'고 인터넷에 공개한 직후였다.

대교협은 입시 컨설팅을 하는 학원을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한 데 이어, 사교육 기관과 고교가 학생들 수능 정보를 교환하면 '개인정보법 위반'이라고 했다. 고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즘 교육계 안팎에선 대교협이 발표할 세 번째 학원 발묶기 정책이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대교협의 '승리'가 아니다. 정말 사교육이 필요 없게 되는 교육 환경이다. 그렇게 되려면 공교육이 질과 양 모두에서 사교육을 앞서야 한다. 실력으로 이겨야 한다는 말이다. 상대의 발과 손을 묶고서 백 번 이겨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면 언젠가 사교육은 다시 고개를 들고 공교육을 압도하게 돼 있다. 대한민국 교육 역사 자체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대학 입시는 수시 전형만 2500개에 이를 정도로 '복잡함' 그 자체다. 이런 마당에 공교육이 학생과 학부모의 다양한 기호에 맞춰 입시 상담을 해내지는 못한 채 몽둥이로 사교육 때려잡기만 해서는 앞으로는 이기고 뒤로는 지는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 사교육은 학원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학생 학부모가 원해서 생긴 것이다. 이것을 줄이고 없애려면 학생 학부모가 공교육을 원하게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대교협이 사교육과 경쟁해 당당히 승리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경쟁자를 꽁꽁 묶어두고 혼자서 만세를 외치는 상황을 보니 박수 칠 마음이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