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창자가 꼬여 복통이 일어난 네 살배기 아이가 응급실을 전전하다 끝내 숨진 사건이 최근 있었다. 지난달 21일 일요일, 대구에서의 일이다. 몇몇 언론에 아이의 '억울한 죽음'이 보도되긴 했으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이의 병은 장중첩증(腸重疊症)이었다. 소장(小腸)이 유연한 소아들은 창자가 인접 창자 안으로 말려들어 가 꼬이는 일이 생긴다. 유아기에 종종 생기는 병이다. 젤리 같은 점액성 변이 나오는 특징 때문에 진단이 비교적 쉽다. 아이의 배에 초음파 검사를 하면 금세 확진된다. 치료도 간단하다. 항문을 통해 대장에 공기를 밀어넣어 그 압력으로 꼬인 창자를 풀어주면 된다. 고무장갑 손가락 부분이 안으로 말려 꼬였을 때 입으로 바람을 불어 쉽게 펴듯이 말이다. 꼬인 창자에는 피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빨리 풀어줄수록 좋다.

아이의 부모는 먼저 2곳의 종합병원에 문의했다. 다들 휴일에는 소아과 진료가 힘들다며 난색을 보였다. 이에 부모는 경북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곳은 권역 응급의료센터이다. 대구 지역에서 발생하는 응급환자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병원은 아이를 돌려보냈다. '장 꼬임'이 의심되나 파업 중이라 확진 검사를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초음파로 5분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아이는 근처 조그만 병원으로 옮겨져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예상대로 장중첩증이었다. 부모는 경북대병원에 진단 결과를 알리며 다시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치료를 할 의료진이 없다며 와도 소용없다고 했다.

항문에 공기를 주입하는 치료는 간단한 시술이다. 마취 없이 15분이면 할 수 있다. 첨단 의료장비도 필요 없다. 어느 병원에나 있는 방사선 투시기만 있으면 된다. 그럼에도 병원은 아이를 외면했다. 아무리 파업 중이라도 그 정도의 의료행위와 이를 받쳐 줄 의료진이 없었다니, 이해가 안 된다. 부모는 휴일 장중첩 아이의 병원을 대구에서 찾지 못했다. 결국 저녁 늦게 구미시(市)로 건너가 치료받다 사단이 났다.

권역 응급의료센터는 매년 1억~3억원 정부 지원금을 받는 곳이다. 민간병원이 하기 싫은 일을 하라는 뜻에서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게다가 경북대병원에는 대구시 응급의료정보센터(1339)가 있다. 여기에 연락하면 수술이나 처치가 가능한 곳을 파악하고 알려준다. 하지만 병원은 정보센터에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부모가 백방으로 뛰어다녔을 뿐이다.

아이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려면 구체적인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상황이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안이하고 느슨한 휴일 응급의료체계와 직무태만이 문제인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병원들이 해외 환자를 유치하고 의료기술을 수출한다고 요란하다. 하나 그만한 응급환자 처치도 못하면서 '의료강국 코리아'를 외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병원은 기본부터 챙겨야 한다.

♣ 알려왔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자 및 12월 5일자 기사와 관련, 경북대병원 노조는 “파업 기간에도 응급실은 100% 운영했다. 병원 파업이 장중첩증 환자의 죽음의 원인이 아니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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