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신 경제부장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 위원 1명이 10개월째 공석 중이다. 이 자리에 가고 싶어 하는 후보가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에서 광화문까지 줄을 섰다는 소식도 이제 까마득해졌다. 왜 빈자리를 채우지 않는지, 적임자가 없어선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자리를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건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다.

"금통위원은 하는 일 없이 연봉만 많이 받는 자리라는 게 대통령의 기본 생각"이라는 말도 들린다. 기업에서 임원 1명 줄여도 경영에 문제가 없는 경우가 있듯이, 금통위원 7명 중 1명쯤은 없어도 금통위가 잘 굴러가고 빈자리 채워봐야 세금만 축낸다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금통위는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정하는 최고 의결기구이고, 핵심 기능 중 하나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것이다. 물가와 환율·투자·소비·자금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준금리를 결정한다는 건, 그 나라 경제가 인플레이션의 폭풍 속으로 흘러가느냐,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지느냐, 잔잔한 바다로 순항하느냐를 좌우하는 핸들을 잡고 있는 것과 같다.

예컨대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 타이밍을 놓치고 저금리 상태를 오래 끌고 가면 돈이 너무 많이 풀려 부동산 가격 폭등, 증시 과열 같은 버블 경제를 일으킨다. 노무현 정부 때의 부동산 폭등,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가 대표적이다. 버블 붕괴의 칼끝은 항상 경제적 약자(弱者)를 먼저 겨냥한다. 그런데도 어느 나라든 대개의 정권(政權)은 경기부양과 성장을 위해 낮은 금리 수준이 지속되길 원한다. 짧은 시간에 경제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단임제 정권은 저금리의 유혹에 빠지기 더 쉽다. 다음 정권에서 버블이 터져 빈곤층의 고통이 커지고,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질망정 당장엔 저금리의 단맛을 즐기고 싶어한다. 권력의 이런 도덕적 해이가 금리를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가지 않게 하려고, 금리가 권력자와 관리(官吏) 몇몇에 휘둘리지 않게 하려고 만든 견제 장치가 바로 금통위다.

한국은행법이 금통위원회를 7명으로 구성하게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기준금리를 정할 때 3대3으로 입장이 갈리면 나머지 1명이 캐스팅 보트를 쥐게 돼 있다. 금통위원 1명은 단순히 '7명 중 1명'이 아니라, 표 대결에서 금리정책 방향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결정적 1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이 결정적 1표를 임명하지 않고 있는 것은 금통위를 압도적인 '여대야소' 상태로 두고 싶어서일까.

금통위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에서 금통위원 자리를 이렇게 긴 시간 방치하는 건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국제적으로 창피한 사건이다. '대한민국 금통위 잔혹사(史)'라 부를 만하다. 이런 굴욕을 당하면서도 금통위에선 항의하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청와대가 금통위를 기형적 구조로 만들어 금리정책을 장악하려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금통위에 대해 대통령의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아무래도 일정 기한 안에 의무적으로 금통위원 인사를 하도록 법을 고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