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발표된 애플의 실적에서 한국 기업들이 눈여겨봐야 할 것은 콘텐츠 비즈니스의 무서운 성장이다. 애플은 지난 4분기 '아이튠즈' 음악 스토어와 각종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이하 앱)을 판매하는 앱스토어에서만 무려 11억달러(약 1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 시티은행은 애플의 콘텐츠 수익이 올해부터 연간 20억달러 정도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애플은 지난 석 달 만에 11억달러를 해냈다.
사실 애플의 콘텐츠는 그들이 중국에서 외주 생산한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고가에 팔기 위한 미끼 상품 성격이 강했다. 고작 1달러 안팎인 앱을 팔아봐야 실제 매출 증가에 기여하는 부분은 1%도 안 된다는 것이 세계 IT업계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애플은 4분기 실적을 통해 자신의 콘텐츠가 단순한 미끼 상품이 아닌, 그 자체로도 엄청난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앱스토어 다운로드 추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마치 맬서스의 인구론에 나오는 인구 증가 그래프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다운로드 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모양을 띤다. 실제 앱스토어 다운로드 건수는 23일 2008년 오픈한 지 31개월 만에 100억건을 돌파했다. 애플의 음악 사이트인 아이튠즈가 작년 2월 67개월 만에 다운로드 100억건 기록을 세웠었는데 앱스토어는 그 기록을 절반 이하로 단축시킨 것이다. 게다가 애플의 콘텐츠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판매를 매년 60~70%씩 증대시키고, 더 많이 판매된 하드웨어는 다시 콘텐츠 판매를 눈덩이처럼 불리고 있다.
애플의 콘텐츠 공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계적인 미디어재벌 루퍼트 머독과 손잡고 아이패드용 모바일 신문인 더 데일리(The Daily)를 창간할 계획이며, 구글 TV를 통해 방송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자동차에 구글의 각종 디바이스를 심은 구글 자동차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심지어 미국 미디어 전문가들은 "애플이 세계의 콘텐츠 시장을 장악하고 이를 활용해 휴대폰·PC·TV 등 IT 완제품 시장까지 완전히 장악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내놓고 있다.
반면 우리는 특유의 순발력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같은 하드웨어에서는 애플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지만 콘텐츠는 여전히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그래픽과 스토리를 지닌 온라인 게임 등 좋은 콘텐츠가 많이 있는데도 이를 세계화하는 데는 번번이 실패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콘텐츠 시장에서도 애플의 대항마로 나설 곳은 삼성전자나 SK텔레콤 같은 한국 IT 대기업밖에 없다. 이들 대기업이 기업 간 장벽을 허물고 중소 콘텐츠 개발업체를 이끌며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콘텐츠에 투자할 수 있는 경영자의 직관과 배짱이 있어야 한다. 애플의 콘텐츠 투자는 이미 10년 전에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