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를 주재하느라 영어를 쓸 일이 많았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G20 회의 준비 실무를 맡았던 이창용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이 최근 "영어만 잘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G20 회의를 위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텐데 오히려 이 두 사람은 영어만 잘해선 소용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윤증현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G20 회의 때 썼던 내 영어는 사실 콩글리시(한국식 영어)"라고 고백했습니다. 윤 장관은 "자신감 있게 말했더니 콩글리시도 모두 이해하더라"면서 "매끄러운 회의 진행을 위해선 유창한 영어보다는 축적된 경험과 알맹이 있는 발언 내용이 더 중요했다"고 말했습니다. 예컨대 윤 장관은 호주 재무장관에게 '발언 시간을 두 배로 쓰라'는 뜻으로 "You can use double"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영어 문장은 아니지요.
회의 막판에 터키 재무장관이 급하게 "1분만 발언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윤 장관은 "터키 장관이 'SOS'를 보낸다"고 표현했답니다. 윤 장관의 'SOS' 발언에 대해 영국 재무장관은 "SOS는 그럴 때 쓰는 게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 쓰는 거다"라고 정정해 주기도 했다는군요.
중국 재무장관이 안건에 대해 끝까지 반대할 때 윤 장관은 "(그렇게 계속 논란만 하면) You die, me die, all die.(너 죽고, 나 죽고, 모두 죽는다)"라고 말해 그야말로 콩글리시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하는군요.
윤 장관이 회의장에서 '콩글리시'를 쓸 때마다 각국 장관들은 파안대소하면서 오히려 "의장이 유머와 위트를 발휘해서 회의를 매끄럽게 이끌었다"고 유쾌하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윤 장관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경험과 배짱이 쌓이면 못 할 일이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에서 배운 토종 영어라도 자신 있게 얘기하면 모두 알아듣는다는 것이고, 각국 재무장관들이 모인 국제회의도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창용 단장도 "G20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해외 유학을 다녀왔거나 해외에서 직업을 가진 민간인을 채용했는데, 정부 일이라는 게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 말했습니다. 이 단장이 실제 겪어보니 영어만 잘하는 인재로는 일 맡기기에 부족하고, 행정 경험과 우리나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인재여야만 일을 제대로 처리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단장은 "외국에 나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학을 영어로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인재를 국내에서 부모 밑에서 키워야 한다"면서 '토종 영어 인재'의 육성을 강조했습니다. '영어 공포증'에 걸려 어린 자녀들에게 오직 '영어'만 강조하고 아이 홀로 조기 유학까지 보내는 부모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얘기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