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진·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한 학기 강의가 끝나는 날 집에 와 몸무게를 달아보았다. 정확히 3.5㎏이 빠졌다. 강의를 시작했던 9월에 비해 허리 벨트도 한 칸이 줄어들었다. 길이로 하면 2㎝가 줄어들었다.

누구는 체육관 안 가고 먹어 가면서 하는 효과적인 다이어트라고 생각하겠지만, 문제는 방학이 끝나면 4.5㎏이 늘어나 있다는 데 있다. 물리학적으로 엔트로피 법칙엔 예외가 없다. 그리고 세상은 절대 게으른 자에게 너그러움을 주는 법이 없다.

올해는 수업을 듣는 학생이 2배로 늘어났다. 동료 교수들은 농담 삼아 '씨엘 효과'(그룹 2NE1의 씨엘이 내 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네 번의 시험 채점으로 고통받은 것을 빼곤. 막상 종강을 하니 더 해줄 것이 있었는데 하는 아쉬운 면이 더 생각이 났다.

하지만 움켜진 손으로 빠져나가는 시간을 누가 막겠는가? 이렇게 학생들과 함께 공유했던 시간이 있어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박수가 나왔다. 박수는 두 가지 의미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하나는 어려운 물리학 수업에서 해방되고 한 학기를 무사히 잘 끝냈다는 자축의 의미일 테고, 다른 하나는 '교수님 수고했습니다'라는 내 입장으로 해석한 의미이다. 물론 전자의 의미가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매듭이 지어지듯이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가고 나는 한 살을 더 먹는다. 한 학기 한 학기 강의를 마치면서 드는 생각은 시원섭섭함이다. 영화를 찍는 영화감독 친구도 다 찍고 난 다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 하지만 또 학기를 맞이하고 또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또 같은 마음일 것이다. 다시 반복할 수도 없는 업무를 하는 대통령도 임기를 마치고 나면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다.